30년을 이어온 이탈리아의 창의적 재사용 센터

먼저 이 길을 오래 걸어온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산업에서 남은 물질을 교육의 자원으로 바꿀 수 있을까.
그 일을 일회성 프로그램이 아니라, 기업과 교육기관, 시민이 참여하는 지속적인 시스템으로 만들 수 있을까. 자원(ZAONE)이 한국에서 이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 이탈리아 레지오 에밀리아에는 이미 1996년부터 산업에서 남은 물질을 교육과 문화의 자원으로 전환해온 레미다(Remida)가 있었습니다.
레미다는 1996년 이탈리아 레지오 에밀리아에서 시작된 창의적 재사용 센터입니다. 공식적으로는 지속가능성, 창의성, 산업에서 발생하는 잉여 물질에 대한 연구를 연결하는 문화 프로젝트이며, Fondazione Reggio Children의 자회사이기도 합니다.
레미다가 시작된 레지오 에밀리아는 교육으로 잘 알려진 도시이지만, 동시에 제조업이 강한 산업도시이기도 합니다. 세계적인 패션기업 Max Mara가 1951년 이곳에서 시작됐고, 지금도 주요 운영 본사를 레지오 에밀리아에 두고 있습니다. 지역에는 패션뿐 아니라 기계·자동차 부품을 비롯한 제조기업과 생산시설이 넓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 도시에서 1996년 레미다가 시작됐습니다.


레미다는 생산 과정에서 남은 물질을 단순히 폐기물이 아니라 연구하고 탐색할 수 있는 재료로 바라봅니다. 지역 기업에서 나오는 생산 부산물, 불량 소재, 초과 생산물과 재고 가운데 폐기로 향하던 재료를 모아 학교와 교육기관, 시민에게 다시 제공합니다.
하지만 레미다의 핵심은 물질을 다시 사용하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물질의 색, 형태, 감촉, 소리와 같은 특성을 관찰하고 연구하며, 이미 용도와 가치가 정해졌다고 여겨진 것에서 새로운 표현과 질문을 발견합니다. 워크숍에서도 정답이나 결과를 가르치기보다 참가자가 직접 재료를 다루고 자기 방식으로 탐색하도록 돕습니다. 레미다는 이렇게 산업에서 남은 물질을 교육의 재료로 전환하고, 그 재료를 통해 사람들의 관점까지 바꾸는 일을 30년 동안 이어온 곳입니다.
우리가 알고 싶었던 건 ‘무엇을 하는가’보다
‘어떻게 지속되는가’였습니다.
자원은 2023년 레지오 에밀리아를 방문해 레미다의 자원 수급과 배분 방식, 교육 프로그램, 지역 프로젝트, 그리고 이를 둘러싼 교육 생태계를 직접 살펴봤습니다. 기업에서 나온 자재는 어떻게 이동하고 분류되는지, 누가 이를 교육 현장에서 사용하는지, 도시와 기업·교육기관·시민이 어떤 역할을 나누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특히 주목한 것은 개별 프로그램이 아니라 이 모든 과정이 오랫동안 유지되는 방식이었습니다.
자원을 내놓는 기업, 이를 수거하고 관리하는 주체, 교육 현장에서 재료를 사용하는 교사와 기관, 그리고 이를 문화와 교육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시민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ZAONE이 한국에서 만들어가야 할 시스템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관계를 이해하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이 만남을 계기로 자원과 레미다는 파트너십을 맺었습니다. 자원은 한국에서 구축하고 있는 휴면자원 수급과 교육 시스템, 레미다가 레지오 에밀리아에서 오랫동안 운영해온 자원 배분과 교육 시스템을 서로 살펴보며, 기업의 자원이 교육 현장과 연결되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경험과 관점을 나누고, 각 사회가 가진 조건 안에서 더 나은 실천을 함께 찾아가기 위한 대화를 시작하였습니다.


2024년, 레미다가 서울에서 기업과 교육자를 만났습니다.
2024년 자원은 레미다팀을 서울로 초청해 기업과 교육기관, 교육자를 대상으로 포럼과 워크숍을 열었습니다. 기업 관계자들과는 기업이 어린이의 미래를 위한 교육과 사회의 변화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이야기했습니다. 교육자들과는 레미다의 프로젝트를 살펴보며 물질을 바라보는 관점과 문화, 물질이 놀이와 교육에 미치는 영향, 어린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교육까지 대화를 확장했습니다.
우리는 서울을 시작으로 다양한 도시에서 우리의 프로젝트를 확산하려고 합니다.
레미다가 30년 동안 이어온 경험은 우리에게 하나의 완성된 답이 아니라, 이 일이 실제 사회 안에서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자원은 이제 한국의 제조 현장과 교육 현장에서 그 다음 가능성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